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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새 대통령을 맞는 국민의 자세

지난 9일 한국에서 제20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이 실시됐다. 국민은 진보 정권이 내세운 후보 대신, 보수 야권이 추천한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정권교체를 이뤘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래 매 10년마다 바뀌던 보수와 진보 정권이 이번 선거에서는 5년 만에 교체됐다. 20년 이상 집권하겠다던 진보 정권이 5년 만에 교체된 이유는 현 정부의 실정 때문이다.     지난 기간 한국사회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국가 안보와 외교 면에서는 대한민국을 일제식민지에서 해방시키고, 6.25 참전으로 한국의 공산화를 막고, 남한에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뿌리를 내리도록 지원해준 미국과의 한미동맹을 약화시켰다. 또한 이웃 사촌이어야 할 일본과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졌다.     반면 6.25 남침을 획책하고 지금도 한반도 무력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고 핵무기를 보유 개발하고 있는 북한을 주적에서 제외시켰다. 오히려 북한과의 교류에 연연해 하고, 6.25 당시 북한을 도와 남침해 한반도 통일을 가로막고, 한국군과 유엔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중국에 저자세를 취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렸다.     경제면에서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경제정책, 이에 따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많은 영세 자영업이 문을 닫았다. 부실한 코로나19 방역 대책으로 실업자가 속출하고 청년 일자리마저 줄어들었다.     미흡한 대책을 믿고 추진한 탈원전 정책은 불필요한 낭비만을 초래했고, 잘못된 시장 진단에 의한 부동산 정책으로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중심이 아닌 정부 주도 경제 활성화를 꾀하면서 국가 채무가 1000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GDP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50%를 넘으며 선진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변화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 사회가 공정과 정의가 받아 들여지지 않고 상식과 사회 규범이 통하지 않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진영 논리로 함몰된 편협한 인사 정책으로 정권의 권위는 추락하고 사회 기강은 느슨해졌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정치, 국방, 외교, 경제, 사회는 방향감각을 잃고,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차기 정권의 임무는 막중하다. 일관된 외교정책으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 사분오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민생에 활력을 불어넣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이와 같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대통령의 자리에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은 정치 신인이 선출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정책보다는 인연을 중시하는 한국 정치판의 고질적인 병폐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한 사람의 교체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갈라진 사회를 통합하고, 경제를 살리고, 자유진영의 일원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바로 세우기 위해 국가 전체가 나서야 한다. 정치가들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새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적극 협력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권영무 / 샌디에이고 에이스 대표시론 대통령 국민 대통령 직선제 자본주의 시장경제 한국 사회

2022-03-18

[시론]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넘어…

전두환 전 대통령이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욕이 교차한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 전 대통령만큼 끊임없이 비판받고 마지막 순간까지 논란을 일으킨 경우는 없었다. 전 대통령이 철권통치했던 8년(1980~1988)은 정치적 억압과 권위주의 통치, 인권 탄압 등이 이어졌다. 그는 12·12 쿠데타를 통해 권력 기반을 잡은 후 5·18 민주화 운동을 무력 진압하며 집권했다. ‘80년의 봄’으로 상징됐던 민주화 바람은 그의 등장으로 싹이 꺾였다.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많은 시국 사범들이 잡혀가 옥고를 치렀다. 언론에 대해선 보도 통제와 사전 검열이 일상화됐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2차 오일쇼크의 경제 위기를 벗어나 1980년대 유례 없는 호황기를 맞았다. 정치적으로 암울했지만 단군 이래 처음이라는 ‘물가 안정’ 등 경제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긍정적 사실이다.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는 결단으로 국가적 파국을 피했다. 전 대통령은 직선제 수용이 사실 자신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유혈 사태를 통해 권력을 잡고 폭압 체제로 국민을 억눌렀던 전 대통령은 권력을 순순히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예상했으나 이런 예상을 깨고 평화적 과정으로 권력을 이양해 국가적 비극은 피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때도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많이 저주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고로 찾은 민주화의 기회를 짓밟았다며 정치인들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비난하고 막말로 욕하고 저주했다. 지금 여권 인사와 일부 언론이 별세한 전 대통령을 전두환씨라고 호칭하는 것에 대해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다.     사회운동가이며 영문학자인 백낙청 교수는 “‘학살자 전두환 사망’ ‘전두환씨 사망’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 별세’까지 시중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악평과 폄하로 표현한다”라며 “선인도 악인도 죽음 앞에서는 말을 삼가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전두환은 유언에서 북녘 땅이 바라다 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서 기어이 통일의 그날을 맞고 싶다 라고 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전두환은 ‘김일성 왕조가 무너지고 조국이 통일되는 감격을 맞이하는 일’이 ‘평생 지녀온 염원과 소망’이라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좌우 진영과 지역, 계층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 이 대립과 갈등이 격화된 출발점이 바로 전 대통령 집권 과정이었다. 이 갈등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 격동의 현대사 중심에 서있던 전 대통령이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김대중 대통령도 전 대통령에 대해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고 했다. 이제는 어두웠던 역사의 기억도 그와 함께 떠나보냈으면 한다. 그의 죽음과 함께 우리 사회도 대립과 갈등, 상처를 넘어서는 길로 가기를 바랄 뿐이다.   전두환의 죽음과 함께 불행했던 한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역대 모든 정부의 공(功)은 끌어 안고 과(過)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악마를 타도하겠다고 악마를 닮아서는 안 될 일이다.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죽음의 강을 넘은 한 인간, 원한의 한을 마감해야 하는 전두환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수석부회장시론 갈등 대립 대통령 직선제 박정희 대통령 전직 대통령들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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